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韩语导游词:用韩语介绍周庄

发布时间:2011-01-02来源:查字典留学网

韩语导游词:用韩语介绍周庄

중국 장쑤성[江苏省]에 위치한 작은 마을로 강과 호수로 둘러싸여 중국의 베니스라 불린다

쑤저우시 아래 현급 시인 쿤산[昆山市]에 위치한다. 쑤저우에서 남동쪽으로 30km, 상하이에서 남서쪽으로 60km 떨어져 있다. 북송 시대인 1096년부터 현재의 이름으로 불렸다. 호수와 강, 수로로 둘러싸인 마을로 ‘중국의 베니스’라 불린다. 가옥을 포함한 대부분의 건축물이 명나라와 청나라 시대에 건설되었으며 과거 모습을 가장 잘 보존하고 있는 지역으로 꼽힌다. 종횡으로 교차하며 마을을 관통하는 수로 덕분에 오랜 세월 전화를 피하고 옛모습을 보존할 수 있었다. 과거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운치 있는 물의 도시라는 이미지 덕분에 현대에 들어와 관광명소로 각광을 받고 있다. 건물로는 명대에 건설된 장팅[张厅], 청대에 건설된 선팅[沈厅] 등의 가옥과 송대에 건설된 도교사원이 유명하다. 수로를 가로지르는 14개의 석교도 각기 다른 건축 양식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볼거리로 꼽힌다. 특히 솽교[双桥]와 푸안교[富安桥]가 유명하다.

■ 주장 (周庄, zhōuzhuāng)

주장(저우좡)은 강소성 곤산(昆山)시의 옛 도시이며 징호(澄湖), 백현호(白蜆湖), 정산호(淀山湖)와 남호(南湖)로 빙 둘

러싸인 곳에 위치하고 있다. 이곳은 강소성 오강시(吳江市) 오현(吳縣)과 상하이시 청포현(靑浦縣)의 경계 지점으로 주변에 대관원 풍경구가 있다.

송 원우(元祐) 연간(1086) 주적공랑(周迪功郞)이 불교를 신봉하여 장전(莊田) 200무를 전복사(全福寺)에 시주하면서 백성들이 이를 칭송하여 주장(周庄)의 이름이 있게 되었으며, 점차 촌락이 형성되고 소주 봉문(篈門) 밖 40리에 큰 진(鎭)이 설치되어 지금에 이르기까지 약 900여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주장은 “사면이 물로 둘러싸인 물의 나라”이며, “지척을 왕래하더라도 반드시 배타고 노를 저어야” 했던 특수한 자연 환경으로 인하여 900여 년간, 여러 왕조의 변천과 많은 전란 속에서도 전화를 피하여 지금에 이르도록 여전히 원래의 수상 건축물과 기타 독특한 면모를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이곳을 다녀간 많은 사람들이 허다한 명․청 건축물에 찬탄하고, 다리와 수로, 인가가 어우러진 모습에 매료된다.

□ 명․청 주택과 사원 건축

주장의 약 1,000호의 민가 중에서 명․청대와 민국시기의 주택이 50%를 차지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 심청(沈廳), 장청(張廳), 책청(迮廳)과 장청(章廳) 등이다.

심청의 원 이름은 경업당(敬業堂). 청말에 송무당(松茂堂)으로 바꾸었는데 沈万三의 후예인 沈本仁이 청 건륭7년(1742년)에 건축한 것이다. 심청은 크게 전․중․후 3부분으로 나뉜다. 전부는 수장문(水墻門)과 하부(河埠)로 배를 정박하고 세탁하는 곳인데 이것은 강남수향의 독특한 건축양식이다. 중부는 장문루(墻門樓), 차청(茶廳), 정청(正廳)으로 손님을 접견하고 혼례나 상례 등 집안의 큰일을 논의하고 처리하는 곳이다. 후부는 대당루(大堂樓), 소당루(少堂樓), 후청실(后廳室)이 있는데 가족들이 기거하는 곳이다.

현재 심청 안에는 서화진열실, 출토문물진열실, 민속기물진열실 등이 있다.

장청, 張廳, Zhāngtīng】

장청의 원 이름은 이순당(怡順堂). 명대 중산왕 서달지의 아우 서목의 후예가 명 정통연간에 지은 집으로 그 후 청나라 초기에 장씨가 구입하여 옥연당(玉燕堂)이라 바꾸었는데 이 때문에 세상에서는 장청이라 불린다. 명대 민가의 건축물로는 세상에 드물게 남아있어 고건축 연구에 귀중한 자료이다.

전복사는 모두 다섯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제일 앞쪽은 산문(山門)으로 편액에 “수중불국(水中佛國)”의 4자가 쓰여 있다. 산문을 들어서면 거구가 장대한 장수가 양쪽에 서있고 가운데 미륵불이 모셔져 있다.

둘째 구역은 귀각전(歸閣殿)으로 한가운데 관우상이 모셔져 있다.

셋째 구역은 대웅보전(大雄寶殿)으로 여래불(如來佛) 좌상이 있는데 높이는 삼장 남짓하고 부처님 손바닥 안에 한사람이 누워 엎드릴만 하니 이렇게 큰 불상은 강소․절강성에서 손꼽을 정도로 적으며 항주 영은사의 여래불과 견줄만하다.. 여래불 양곁에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있고 후면에는 관음보살과 4대금강 등이 있는 거대 부조가 있다.

넷째 구역은 지장전(地藏殿)으로 지장보살상이 있으며, 아주 정교한 문양으로 고아하게 만든 동종(銅鐘)과 주지실이 있다.

다섯째 구역은 장경각(藏經閣)으로 전복사에서 가장 웅장한 건물이다. 장경각은 3층높이로 선연(善緣) 지연(智緣) 두 스님이 10년을 탁발하여 이룩하였다고 한다.

□ 석교(石橋)

세덕교(世德橋)와 영안교(永安橋)가 종횡으로 서로 연결되고 돌계단이 서로 이어져 쌍교를 이루었다. 주장 동북부에 있는데 은자빈(銀子濱)과 남북시하(南北市河)가 이곳에서 십자로 교차한다. 명나라 만력(萬曆)년간 (1573-1619)에 세워졌는데 다리 면이 하나는 가로로 하나는 세로로 되있고 교각의 모양이 하나는 둥글고 하나는 네모난게 마치 옛날의 열쇠 같다고 하여 월시교(鈅匙橋)라고도 한다.

부안교는 주장 중시가(中市街) 동쪽에 있는데 다리와 누각이 서로 연결되어진 독특한 건축물로 강남 수향(水鄕)에서 몇이 안돼는 입체형 다리중 하나이다. 원나라 至正 15년(1355)에 처음 세워졌으며 후에 심만삼(沈萬三)의 아우 심만사(沈萬四)가 자금을 대어 중건하고, 이때 ‘부유하고 평안하라’는 소망으로 이름을 부안교라 바꾸었다. 현재 네 곳의 다리 누각에는 처마와 기둥, 조각과 그림이 그려진 들보들이 고스란히 보전되어 있는데 건물에는 찻집, 음식점, 상점 등이 있다.

정풍교는 주장의 중시하(中市河)서쪽에 있는데 주장의 옛이름인 정풍리(貞豊浬)에서 그 이름을 얻었다. 정풍교는 명 숭정년간에 세워졌는데 여러 번의 수리가 있었지만 처음과 같은 모습으로 여전히 수로에 걸쳐져 있다. 다리 북서쪽에 덕기(德記)주점이 있는데 주점에 앉아 밖을 보노라면 잔잔한 물결위에 비친 다리 모습과 분주히 오가는 배들의 모습이 매우 아름답다.

외국인보다 내국인에게 더많이 알려진 중국 수상가옥 마을입니다.

상해에서 꽤 거리가 있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약 60Km 거리로 알고 있습니다. 한시간 반정도 거리일껄요....

하여튼 상해 체육관(홍구 경기장 아님)에 가면요.

매일 오전에 1시간마다 주장으로 가는 버스가 있습니다.

거기서 약 120원 정도를 내면 왕복 코스로 다녀올 수 있습니다.

예약하지 않고 당일가면 거의 다 표 있습니다.

저녁 6시쯤 돌아올 겁니다. 내국인 자유여행이므로 상당히 저렴한 가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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